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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릇 잘해야 한다. 세속의 대(代)를 잇지 못하고 불문에 들었으니, 더욱 열심히 정진하는 것이 속가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고, 부처님께도 죄를 짓지 않는 일임을 명심해라.” 영월(迎月)스님이 상좌들에게 늘 당부하던 가르침이다.

 

1960년대 초반 자유당 말기에 영월스님이 지리산 벽송사에 잠시 머물때의 일이다. 며칠째 양식이 떨어져 대중들이 공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영월스님은 “먹을게 없으니 오늘까지 기다려 보고, 먹을게 나오지 않으면 떠나야 겠다.”고 혼자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남원시 인월면에 사는 주민 다섯명이 쌀을 지고 올라왔다. “웬일들이요.” 의아한 생각이 든 영월스님이 묻자, 주민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꿈에 어떤 분이 나타나서 내일이면 스님이 떠나니 빨리가서 불공(佛供)을 드리라고 해서 올라오게되었습니다.” 스님은 상좌들에게 이때의 일화를 전해주면서 “중이 공부만 제대로 하면 먹을 것이 떨어지는 일은 없으니, 언제나 공부하는데 힘을 쓰라.”고 당부했다.

 

영월스님은 대중들에게는 온기(溫氣)있는 공양을 제공하는 원주소임을 잘 지냈다. 하지만 당신은 먹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대중들이 공양을 마친 후에 공양간에 들어가 찬밥을 한 술 뜨는 것으로 곡기(穀氣)를 대신했을 정도였다.

 

스님의 둘째 상좌 등각스님(직지사 은선암 암주)은 “우리 스님 이야기를 신문에 내는 것 자체가 은사스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일”이라면서 “언제나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수행으로 일관하셨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등각스님이 전하는 영월스님의 육성이다. “출가한 몸으로 발자취를 남기려고 신경쓰지 말아라.”

 

영월스님의 맏상좌 고봉스님의 셋째상좌인 정일스님은 “노스님은 낮잠 자는 모습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다.”면서 “간혹 몰래 낮잠을 자다가 노스님에게 ‘엄청나게’ 야단을 맞고 걸망을 싸야했던 제자들도 있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공부에 전념하기만 해도 불법을 배우기 어려운데, 낮잠을 잘 시간이 어디 있느냐. 다른데 신경쓰지 말고 촌각을 다투어 정진하고 또 정진하라”는게 영월스님의 가르침이다.

 

스님은 당신 방에 사용할 땔감을 손수했다. 큰절인 해인사에는 땔감을 해 오는 부목(負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한사코 마다했던 영월스님은 시간을 내어 산을 오르곤 했다. 작은 손도끼와 톱을 들고 가야산을 올라 고사목(枯死木)을 고르던 어느날 스님은 법체(法體)가 손상되는 일을 만나게 된다. 1973년의 일이다. 비바람에 쓰러져 산비탈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나무의 밑둥을 자르다가 그만 다리가 깔리고 만 것이다. 빠져나오는 것은 고사하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영월스님은 그저 가까이에 있는 암자 이름을 부르는 것이 전부였다. “희랑대. 희랑대.....” 하지만 희랑대까지 그 소리는 미치지 못해고, 스님은 해질녘까지 5시간 이상 피를 흘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저녁예불을 마치고 나온 한 스님이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희랑대 뒤편에 올라온 후에야 발견되었다. 그때까지 의식을 잃지 않고 있던 영월스님은 멀리서 올라오는 희랑대 스님을 보고는 혼절을 했다. 소식을 들은 큰절 스님들이 달려와 나무를 옮기고는 영월스님을 병원으로 모시는 바람에 겨우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스님은 입적하는 날까지 불편한 다리로 생활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남에게 신세지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며 살았던 것이 영월스님이다.

 

영월스님은 재가불자들에게도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근기에 맞는 공부를 할 것을 당부했다. “염불을 보거나 참선을 하거나 경을 읽어야 합니다. 공부하는 마음을 놓지 말고 시간을 허비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됩니다. 애써서 공부하고 정진하세요.” 남에게 드러내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마다했던 어른이지만, 수행정진하고자 하는 재가불자들에게는 이처럼 따뜻한 경책을 잊지 않았다.

 

영월스님을 시봉했던 정일스님의 기억에도 다정한 목소리로 전해오던 노스님의 경책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야, 이 자식아. 공부해라. 출가 수행자가 되어서 다른데 신경 쓰면 못쓴다.”